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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제65호 백동연죽장
  • 정의 및 개설
  • 구조 및 제조
  • 특징
  • 전승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백동으로 된 담뱃대를 만드는 기술, 혹은 그 기술을 가진 사람.

개설

연죽(煙竹)이란 일반적으로 담뱃대를 말하며, 백동연죽은 백동으로 만든 담뱃대를 일컫는다. 따라서 백동연죽장이란 백동담뱃대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백동연죽장은 중요무형문화재 제65호로 지정되었다. 오늘날 연죽을 제작하는 장인은 그리 많지 않은데, 그 가운데에서도 남원은 오늘날까지 연죽 기술이 전승되고 있는 고장이다. 한국에 담배가 들어온 시기는 조선?광해군 때인 1618년경 일본을 통해서였고, 담뱃대는 17세기 초엽에 보급되었다. 남원의 담뱃대는 예부터 전국에서 명성이 높았다.

담뱃대는 형태에 따라 장죽이라는 긴 것과 곰방대라는 짧은 것이 있으며, 장식이 화려한 연죽과 소박한 민죽으로도 나눌 수 있다. 특히 연죽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권위의 상징으로 소중하게 다뤄졌으며, 외출할 때 들고 다니면서 부의 상징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즉, 백동과 대나무로 담뱃대를 만들기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백동을 금·은으로 도금하거나 입에 무는 부분을 옥으로 만들기도 했다. 또한 담뱃대에 무늬를 새겨 화려하게 장식함으로써 담뱃대를 보고 신분을 가늠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처럼 제작 기술이나 장식 기법이 정교하고 다채로워지자 전문 연죽장이 생겨났는데, 남원시 왕정동에 거주하는 황영보 집안은 4대째 전통 담뱃대를 가업으로 제작해오는 연죽장 가문으로 유명하다. 특히 황영보는 13세 때부터 부친으로부터 연죽 기술을 배워 뛰어난 담뱃대 제작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구조

담뱃대의 구조는 입에 물고 연기를 빨아들이는 ‘물부리’와 담배를 담아 태우는 ‘대꼬바리’, 그리고 그것을 잇는 가는 대나무 ‘설대’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대꼬바리는 열을 받는 데다가 구조상 파손되기 쉬워서 구리·놋쇠·백동과 같은 금속으로 만든다. 간혹 사기제품도 볼 수 있으나 극히 드문 예이다. 물부리는 쇠붙이에 한하지 않고 옥·상아·쇠뿔 등 비교적 여러 가지 재료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편이다.

제조

백동연죽을 만드는 과정의 첫번째는 백동을 만드는 것으로, 동 58%, 니켈 37%, 아연 5%의 비율로 합금한다. 니켈의 함유량이 많으면 백색이 나타난다. 합금한 금속들을 두드려 매우 얇게 만들고, 무늬를 넣어 모든 부분을 땜질하여 만든다. 이 과정에서는 금·은 세공과 같이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제작 방법은 용해된 쇳물을 길이 8㎝, 너비 2㎝, 두께 0.5㎝가량의 골판에 부어 식힌 다음, 두드려 얇은 판을 만든다. 두께가 1㎜ 정도 되면 한 감씩 작두로 잘라 다시 0.7~0.8㎜ 두께로 두드려 조정한다.

속이 빈 관을 만들기 위해 처음에는 V자로, 다음에는 L자, 만곡의 순으로 두드려 가며 끝이 서로 맞닿으면 붕사를 바르고 황동으로 땜질해서 붙인다. 그 표면에 구리·금(진오동)·은(가오동)을 합금한 오동을 상감하여 갖가지 문양을 넣는다.

마지막으로 담배꼬바리와 물부리 사이를 설대로 연결하면 완성된다. 설대는 무늬가 없는 것은 민죽, 무늬가 있는 것은 꽃대, 또는 별죽(別竹)이라 한다. 꽃대는 또한 토리에 사용한 무늬에 따라 송학죽·매화죽·용문죽·태극죽 등으로 부른다.

특징

『임원십육지』에 의하면 “점점 사치를 다투는 자들이 백동(白銅)과 오동(烏銅)을 써서 만들고, 금·은을 새겨 넣어 치장하니 담뱃대 한 개에 200~300전까지 한다. 참으로 막중한 재물을 쓸데없이 낭비하는 것이다.”라고 개탄한 글을 볼 수 있다.

이는 19세기 담뱃대의 사치풍조가 심했던 것을 짐작하게 한다. 『경도잡지』에서는 조정의 벼슬아치들이 말 잔등에 담뱃대와 담뱃갑을 지니고 다녔다고 나와 있어, 담뱃갑이나 담뱃대가 남성들의 중요한 치레용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부 계층에서는 오동이나 순은·금은입사·칠보 등으로 호화롭게 장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연죽장으로 일가를 이룬 남원?황영보 집안의 연죽 만드는 기술은 장식용 오동의 배합법이 특이하여 유명하다. 물부리와 담배꼬바리, 두 부분에 백동을 사용하고, 설대는 낙죽(烙竹)이나 각죽(刻竹)한 것을 상품으로 쳤다.

전승

현재 백동연죽장으로는 황영보가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백동연죽장 황영보는 1932년 11월 전북 남원시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 아버지 황용구의 도제로 들어가 배우면서, 할아버지 황찬서로부터 3대째 기능을 전수받아 백동연죽장을 제작해오고 있다.

3대째 백동연죽을 만들어온 국가무형문화재 연죽장 황영보는 만복사지 맞은편 왕정동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황영보가 살고 있는 왕정동은 옛날에는 ‘강정몰’이라 했는데, 산대나무가 많아서 일제 말기 70호의 마을 주민 중 40~50여 호가 담뱃대를 만들었다. 해방 후만 해도 100여 명이 만들었지만 신식 담배가 나오고 현대화 물결에 밀려 찾는 사람이 줄어들자, 이제 황영보만이 유일하게 맥을 잇고 있다.

백동연죽은 구리에 금·은·아연 등을 합금 처리하여 만든 담뱃대로, 민담뱃대와 오동상감(烏銅象嵌) 담뱃대로 나뉜다. 오동상감연죽은 설대에 인두로 소나무와 두루미 등의 낙화(烙畵)를 넣어 만든 제품이다. 송학죽·육모죽·임앵죽·문명죽·애개죽·은삼동 등 다양한 전통 연죽 제작법이 원형 그대로 전수되고 있다.

황영보는 1980년 전라북도 산업디자인전람회 입선, 1984년 전국 공예품 경진 대회 특선 및 전승 공예 대전 입선, 1986년 전라북도 공예품 경진 대회 입선 등을 거쳐 1993년 문화재청으로부터 중요 무형 문화재 67호 백동연죽장 기능 보유자로 인정을 받았다. 현재는 남원 민속촌 내에서 기능 전수관을 운영하고 있다. 요즈음에는 연로한 황영보를 대신하여 그의 아들인 황기조가 아내 박성분과 함께 4대째로 맥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5대째로 손자 황인준군도 열심히 전통문화를 이어 나가고 있다.